팀장모씨: (팀원들에게) 리포트 쓸 때는 말이지 이건 저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고.. 그리고 전문용어 영어 단어같은 거 그냥 영어로 쓰라고. 다 알아들으니까 말이야.
창우: (속으로 투덜투덜...) 얼마나 다 영어로 쓰나요?
팀장모씨: 전부 다. 여기 단어 몇개 영어로 나온다고 문제 될거 없잖아? 오히려 엔지니어들한텐 그게 읽기 좋다고.
창우: 그거보다 훨씬 많아요. encoding, decoding, source code, compile, build, bug, editor, debugger, typing, .... 한글은 몇 개 안 남네요. (다 고쳐서 한 줄에 영어단어가 너덧개씩 있는 보고서를 보여준다) 자 이렇게 쓰면 가독성이 좋을까요?
팀장모씨: ... (독해에 어려움을 겪는 모씨...)
썬의 번역 가이드
썬마이크로시스템에서 만든 StarSuite style guide에 보면 이런 말이 들어 있다.
1.4.2한국어로 번역하지 않는 용어들 (Do not translate)이 부분은 내가 오픈오피스 번역 중에서 가장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번역 가이드의 다른 부분은 몰라도 위 사항은 절대 따르지 않고 번역이나 음역하기를 권장한다. 특히 Gnome은 영문 그대로 쓰지 말고 "그놈"이라고 표기하기를...
1. 고유 명사나 소프트웨어, 운영 체제 등의 고유 이름
MySQL (ODBC) -
PostgreSQL
MySQL (JDBC)
Mozilla
Adabas D
Microsoft Outlook
Oracle JDBC
Microsoft Windows
JDBC
LDAP
ODBC
Evolution
XStorable
...
Branding
"언어와 문화가 다른 지역에 진출할 때 기존 브랜드를 어떠한 형태로 사용할 것인가?", 이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수십년동안 기업들의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회사는 저마다 경우에 따라 다른 전략을 취해 왔고 뭐가 정답이라고는 쉽게 말할 수 없다. 보통 3가지 방법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 본래 브랜딩의 철자를 그대로 가져간다.
- 본래 브랜딩을 그 나라의 언어에 맞게 음역한다.
- 본래 브랜딩을 포기한다.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낸다.
실제로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은 어떤 전략을 사용했을까?
영어 약자로 된 브랜드는 (KFC, HP, ...) 음역으로 쓸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선택이 없지만, 그 외에 1의 선택을 하는 경우는 의외로 별로 많지 않다. 길거리에서 영어로 가득한 간판을 보긴 하지만, "우리 STARBUCKS는..."이라고 회사 소개를 하지는 않는다. 거의 모든 회사가 "맥도나알드~"라고 멋드러지게 한글 음역을 이용하지 TV 화면을 영어로 가득 채우지는 않는다. 우리들도 일상 생활에서 "아웃백에서 봐요"라고 문자를 보내지 "Outback에서 봐요"라고 쓰지는 않는다. (게다가 1바이트 더 많다!)
3번째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잘 찾아보면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햄버거 체인점인 하디스(Hardees)는 미국의 찰스 쥬니어를 가져온 것인데 찰스 쥬니어는 말도 길어지고 왠지 맛있는 느낌이 안 나니까한국판에서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 냈다. 한솥도시락은 일본의 도시락 체인점인 혼께가마도야의 메뉴와 시스템과 인테리어를 그대로 가져왔지만 이름은 우리말로 다시 지었다.
1과 2의 장단점을 적당히 취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로고는 원래 영어가 들어간 로고를 무슨 그림 마냥 그대로 사용하면서 글자로 쓸 경우는 한글 음역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스타벅스, 커피빈,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 리바이스, ...) 원래 로고와 한글 로고를 둘 다 만들어 놓거나 원래 로고의 영어에 한글 표기를 추가하는 식으로 동시에 사용하면서 글자로 표기할 때는 한글 음역을 쓰는 경우도 있다. (맥도날드, 버거킹, 철수하기 전의 월마트, ...)
하지만 로고나 간판을 원래 브랜드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는 많아도, 일반 광고나 보도자료 등의 일반 텍스트 문서에서 영어 표기를 고집한 회사는 한국에 들어온 글로벌 기업중에 거의 없었다. (약자로 된 브랜드는 제외.) 몇가지 예외가 있으니 바로 소프트웨어 회사들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양지사 와의 상표 분쟁에서 패소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Windows 95" 이후 계속해서 한글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 설명에서도 "Microsoft Windows" 영문 표기를 고집하고 (그 전에는 "윈도우"라고 사용했다) 오피스의 경우에도 프로그램 메뉴에까지 "Microsoft Word"라고 영문으로 들어가 있다. 어도비, 오라클 등등 모두 영문 표기를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광고나 그렇지 절대로 언론은 영문 표기로 보도해 주지 않는다.)
한글로 음역해서 쓰는 이유는 그게 세종대왕과 주시경선생께서 기뻐하시는 옳은 방향이라서가 아니라, 그게 더 올바른 브랜딩 전략이기 때문이다. 잠재적인 소비자들에게 쉽게 인식되고, 쉽게 기억되고, 눈에 잘 뜨이는 게 좋은 브랜드이다. 현재 평균적인 한국 소비자들은 왠만큼 교육 수준이 높은 경우에도, 영어 그대로 쓴 브랜드는 기억하거나 인식하기에 힘든 게 현실이다. 물론 본래 브랜드를 지역화하는 비용도 있고 본래 브랜드가 손상될 우려가 있어서 본래 로고를 남겨두고 일부만 지역화한다든지 선택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트레이드오프로 그런 선택을 할 수는 있어도 영어로 쓰는 게 한글로 쓰는 것보다 더 원래 의미를 전달하니까 좋은 브랜딩이다라고는 할 수 없다. 구찌, 버버리, 까르티에의 영문 철자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예외적인 전략을 쓰는 이유는 한국의 소프트웨어 소비자들이 영어에 익숙하기 때문일까?)
에볼루션은 있는데 Evolution은 어딨지
썬의 번역 가이드는 첫째로 한국에 진출한 브랜드들이 취한 현실과 다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의 대부분은 브랜드를 한글로 음역했다. 특히 그놈 에볼루션은 분명히 (내가!) 한글로 "에볼루션"이라고 음역했고 한국어 데스크탑에는 프로그램 정보 창을 보지 않는 한, Evolution이라는 단어도 찾아보기 힘든데 예제에까지 "Evolution"이라고 써 놓는 건 맞지 않다.
또 (소프트웨어 회사들의 상업용 소프트웨어들도 그렇지만) 그 지역의 언어로 표기하는 편이 쉽게 인지되고 기억되는 더 좋은 브랜딩인데도, 왜 OpenOffice.org, Firefox 따위의 번역도 그 "OpenOffice.org", "Firefox"라는 이름만은 영문 표기를 하는 브랜딩을 고집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번역자 맘대로 건드리기도 힘들게 만들어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