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12일 화요일

티보이제이션?

최근 GPLv3와 관련된 글들을 보면 티보이제이션(tivo-isation)이란 말이 등장한다. FSF가 만들어낸 이 말은 프로그램이 오픈소스로 배포된다고 해도, 실제적으로 수정한 걸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도록 만드는 조치를 말한다.

티보(TiVo)는 디지털 비디오 레코더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제품이다. 테이프 VCR을 대체하는 TV를 녹화하는 장비인데, 광고를 건너뛰고 녹화하는 기능이라던지, electronic program guide를 (EPG) 활용해 방송시간 변경같은 것에 유연하게 대처한다든지, 요즘 우리나라 전자회사들이 타임머신이라는 이름으로 고가 TV에 내장하고 있는 타임쉬프트 기능 등을 실제 구현해서 시장에서 성공한 최초의 제품이다.  주체하기 힘들게 다양한 채널과 다양한 컨텐츠로 (그리고 지나치게 많은 광고로) 고민해야 하는 미국 시청자들에게 잘 어필하는 제품이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리눅스 OS 기반이라는 것. 리눅스 기반 장치가 드문 일은 아니지만 10여년전부터 지금까지 ppc 리눅스를 계속 써 왔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최근 버전의 티보 하드웨어에서는 사용자가 직접 소스코드를 수정해서 티보 장치에 적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계속되는 hack에 고민하던 티보측에서는 (리눅스 소스를 감출 수는 없으니) 디지털 사인을 체크하는 장치를 달아서 제 3자가 수정한 소프트웨어는 설치하지 못하는 장치를 부착했다. 이것이 티보이제이션이다. (물론 납땜질을 통한 하드웨어적인 hack들이 나왔지만..)

티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보안을 위한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티보 플랫폼에 대한 컨트롤을 놓지 않으려는 수단이기도 하다. 요즘은 부품 가격이 꽤 내려가서 그럴 필요가 없을 지 모르지만..  티보를 만들 당시에만 해도 CPU, HDD, 비디오 코덱 따위를 부착한 디지털 레코더는 도저히 소비자가 가전제품으로 구입할 수 있을 정도의 원가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티보는 질레트 면도기, 잉크젯 프린터, playstation과 비슷하게 수익 모델을 가져갔다. 티보 기계는 원가보다 싸게 팔면서, TV 프로그램 가이드를 제공하는 서비스의 subscription fee 등을 통해 손해를 보전하는 것이다. 요즘은 부품 가격이 떨어져서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subscription fee가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티보 소스 코드를 수정해서 티보의 공식 서비스가 없이도 잘 동작하도록 무료 EPG 사이트와 연결시키는 펌웨어를 만든다면 티보측으로서는 낭패일 수밖에 없다. 디지털 사인 기술을 보안 용도만으로 사용하는 게 아닌 건 분명하다.

GPLv3에 반대하는 입장인 리누스 토발즈의 주장은 소프트웨어 라이센스는 소프트웨어에 국한해야 하고 하드웨어를 컨트롤할 수는 없지 않느냐라는 것이고, 어차피 소스코드가 있으면 다른 기계에서 돌릴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한다. 하지만 티보이제이션에 반대하는 사람들 입장은 이렇게 되면 실제로 소스코드 변경이 이루어지기 힘들어서 GPL이 보장한 수정과 재배포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거라고 말한다. 특히 개정되기 전에 표현이 너무 포괄적이었던 GPLv3 draft에서는 무고한 DRM enabled media의 사용자가 GPLv3를 위반하는 모호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는데, 개정을 통해서 "티보"와 같이 코드 수정을 사실상 못하게 하는 의도만을 걸러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너무 포괄적으로 썼다가는 데비안의 "아카이브 키"도 GPLv3에 따르면 위반이 되는 경우가 있다...  데비안은 아카이브 키를 무시하는 방법이 있으니까 수정을 못하게 하지는 않는다.)

댓글 1개:

  1. trackback from: 죠커의 생각
    안드로이드 폰은 티보이제이션인가 보다. 소스코드가 공개되어 있어 수정해봤자 안드로이드 폰에서 돌릴 수는 없는 듯. 이런 시스템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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